추억은 바람처럼 향기처럼

길을 가다가 문득 바람이 가슴을 저밀 때가 있다.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의 바람은 가슴을 철렁하게 한다. 봄가을을  타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 동네의 날씨는 항상 봄가을이다 보니 학교 가는 길에 집에 오는 길에 바람이 싸하게 불 때가 많다. 금방 다시 잊어버리긴 하지만 이런 바람이 가슴을 훑고 지나갈 때는 정신적인 외로움이 아닌 살 떨리는 물리적인 고독감을 느끼게 된다. 예전의 여러 추억들이 갑자기 주체할 수 없이 떠오르면서 가슴이 서늘해진다. 마치 바이킹의 끝자리에 타서 내려올 때의 느낌이다. 그 느낌을 지금 글 쓰면서 상상만 해도 가슴이 울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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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문득 정체모를 향기가 정신을 아득하게 할 때가 있다. 바다 냄새가 날 때는 태어났던 부산이 생각나기도 하고, 산의 나무 냄새가 날 때는 안동 산골짜기의 할아버지 할머니 댁이 떠오른다. 가끔 수영장 냄새가 날 때도 있는데 이 때는 어렸을 때 다녔던 백화점의 수영장 물이 연상된다. 주변에 이런 냄새를 낼만한 소스가 없는데도 갑자기 코 끝에 향기가 느껴질 때가 있다. 시각적 기억은 사진처럼 또렷하지만 오래 가질 못한다. 계속 새로운 시각적 기억이 끝도 없이 쌓이기 때문이리라. 그에 비해 시각 외의 후각적/촉각적 기억은 몇 개 안 되기 때문에 더 오래간다. 아직도 태어났을 때부터 덮었다는 담요를 만지면 이유없이 기분이 편해지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타지에서 살다보니까 후각과 촉각에 의한 연상작용에 민감해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