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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의 두 모습: 흑연과 다이아몬드

Those who do not understand the nature of sin and virtue are attached to duality; they wander around deluded. — Sri Guru Granth Sahib

다이아몬드와 흑연의 결정구조 – 출처: tutorvista.com

탄소는 지구 상의 생물을 구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원소다. 순수한 탄소는 여러가지 결정구조로 존재한다. 특별한 결정구조 없이 대강 원자들이 널부러져 있는 무정형의 상태부터, 다이아몬드나 흑연과 같이 많이 알려진 결정구조로도 존재한다. 이렇게 한 원소가 서로 다른 결정구조를 가지고 존재하는 것을 동소체(Allotropes)라고 한다. 탄소는 그 밖에도 몇 가지 더 다른 결정구조를 가지기도 하지만, 역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다이아몬드와 흑연이 아닐까 싶다. 이 둘은 얼핏 보았을 때 공통점이 전혀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맑고 투명함 그리고 영원함을 상징하는 하는 반면, 흑연은 흔하게 볼 수 있으면서 연필에나 쓰이고 잘 부서지는 시커먼 가루이기 때문이다. 이 둘은 사실 구성 성분으로만 보면 100% 탄소로 완전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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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원과 3차원에서의 다이아몬드 결정구조

탄소 원자들이 서로 어떻게 결합해 있는지가 이 둘의 차이를 극명하게 가르게 된다. 탄소는 화학결합을 할 수 있는 전자를 4개 가지고 있다. 손이 4개 달린 괴물을 상상하면 된다. 다이아몬드는 4개의 손이 모두 다른 원자의 손과 악수를 하고 있는 형상이다. 이 4개의 손들은 일단 다른 손과 악수를 하고 나면 다른 결합과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으려고 서로 밀치게 된다. 우리가 2차원의 세상에 살고 있다면 다이아몬드는 위의 그림에서 왼쪽과 같은 구조를 하고 있을 것이다. 하나의 탄소에 붙은 4개의 결합이 최대한 멀어지려면 서로 90도의 각도로 벌어지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3차원이다. 따라서 4개의 결합은 공간을 활용해서 90도보다 더 넓게 109.5도까지 서로 벌어질 수가 있는 것이다. 이 결과로 다이아몬드는 제일 위 그림의 왼쪽과 같은 결정 구조가 되는 것이다.

반면에 흑연은 탄소 원자가 가지고 있는 4개의 손 중에서 3개만 다른 원자와 제대로 악수를 하고, 나머지 손 하나는 정처없이 덜렁거리는 꼴이다. 제대로 악수를 한 손은 3개니까 3개의 손이 공간적으로 가장 넓게 펼쳐질 수 있는 것은 서로 120도의 각도를 이룰 때이다. 따라서 흑연의 결정구조는 육각형 모양의 타일이 무한히 깔려 있는 평면을 상상하면된다. 그러면 남은 손 하나는 그냥 노느냐? 그건 아니고, 육각 타일 평면들을 층간으로 서로 잡아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제일 위의 그림의 오른쪽을 보면 세로로 그어진 선이 보일 것이다. 그 선이 육각 타일 평면을 서로 잡아주는 결합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렇게 손 하나 더 잡고 안 잡고의 차이일 뿐인데, 그로 인해서 우리가 보는 물질의 성질은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다이아몬드는 자연계에서 가장 단단한 광물이다. 금속 절단기에 사용될 정도로 단단하다. 지구과학시간에 광물의 굳기에 대해서 배우는데, 그 중에서 10점 만점의 10점짜리 굳기를 가지고 있는 막판 보스급이다. 반면에 흑연은 10점 만점에 1~2점 정도 된다. 워낙 물러터져서 갸냘픈 종이하고 스쳐도 부서지면서 가루가 되어 버린다. 하지만, 둘 다 탄소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서로 변환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 볼 수 있다. 수 백년 전의 연금술사들이 비슷한 생각으로 금을 만들어 보겠다고 했으리라. 흑연이 다이아몬드가 되려면 매우 고압의 환경이 필요하다. 집에서 가능했으면 다이아몬드는 이미 보석류에도 못 끼었을 것이다. 반면에, 다이아몬드는 산소를 차단하고 2000도 정도로 가열하면 흑연으로 변하게 된다. 하긴, 이 역시 집에서 얻을 수 있는 온도는 아니다.

위의 흑연과 다이아몬드의 사례에서 보듯이 물질의 빛깔, 굳기, 상온에서 고체냐 액체냐 기체냐 등의 문제는 주로 화학의 영역에서 설명이 된다. 물리는 상대적으로 화학보다 문제를 다루는 개념적 수준이 더 거칠다. 갈릴레오가 피사의 사탑에서 떨어뜨렸다고 하는 금속구가 쇠로 만든 것인지 구리로 만든 것인지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이다. 이는 사실 장점이 될 수도 있는데 세상을 더 일반적인 바라보는 느낌이랄까. 그에 비해 화학의 관심사는 딱 적절한 수준으로 조금 더 디테일로 들어가 있는 것 같다. 똑같은 돌멩이인데 하나는 산성비를 맞더니 거품을 내면서 녹아내리고 다른 하나는 왜 멀쩡할까. 뭐 그런 식의 질문을 던진다. 과학 중에서 화학이 특히 매력적인 이유를 꼽는다면 생활 속에서 생기는 자잘한 수준의 질문에 대해서 대답을 얻을 수 있는 공부라는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