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낮술 같은 거

요즘 국제 무대에서 잘나가는 기대주
최경주 선수가 한 얘기예요.
“많이 자빠져 봐야 한다.
많이 자빠져 봐야
일어날 방법도 알고
자빠졌을 때
다치지 않는 방법도 안다.”

저는 한 번도 안 넘어져 본 사람보다는
넘어져 본 사람을 좋아해요.
얘기가 통하고 솔직하니까요.

온실이 영원히 지켜질 거 같으세요?
언젠가는 온실의 비닐도 찢어지고
폭풍 같은 바람이 불어대는 날이 있을 텐데
자빠져 보지 않은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견디겠어요?

사랑에도 넘어져 본 적 있는 사람이
사랑을 논할 자격이 있다고 봐요.
그런 의미에서 사랑에 대한 한마디.


“사랑이란? 낮술 같다.
취한 눈을 들어 바라본 창밖이 너무 환할 때,
그 어이없고 묘한 기분,
거리로 나서면 세상은 너무 밝고 잘만 돌아가는데
나 혼자만 원혼처럼 땅에 발을 붙이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걷는 것….

그렇게 낮술에 취한 기분이 바로,
사랑이 아닐까?

깨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
낮잠과도 비슷하고….”

————–

오른손엔 소주 빈병이 들려 있고
왼손엔 CD용 리모컨이 들려 있고

사랑이란 그런 건가요?

정말 깨고 나면 낮잠과 같은
그냥 그런 건가요?

서서히 이성은 마비되어 가고
감성은 머리 뒤로 흐르는 하이페츠의 비탈리 샤콘느에
뒤엉켜져서 아무 것도 못하는

제가 바보 같은 건가요?
정말 그냥 제가 바보 같은 건가요?

눈물이 흐르는 채로
그저 오로지 내 곁을 맴도는 선율에 의지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제가 바보인가요?

바깥을 바라보니 제가 바보 맞는 것 같네요
경비아저씨 순찰 돌고 계시고
야쿠르트 아줌마 배달하러 올라오시고
버스들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잘 달리고..

그냥 이건 낮잠이에요?

잠 속의 꿈인데
정말 눈물이 흐르고
신기하네요

from 마농의 빨간구두 / 이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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