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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매니저가 되는 시대

생성형 AI의 출현으로 업무 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음은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을 것이다. 2025년은 많은 전문가들이 ‘Agentic AI’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단순히 질문에 대답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AI 에이전트들이 우리의 일상과 업무에 깊숙이 파고들게 될 것이다. 이제는 조직 구성에서 아무리 말단에 있어도, 아무리 신입사원이라도 여러 AI 에이전트들을 부리는 <모두가 매니저가 되는 시대>가 오고 있다. 데이터 분석, 보고서 작성, 스케줄 관리 (또는 이를 하기 위한 코드 작성) 등, 과거에는 여러 직원이나 부서가 나눠서 처리하던 업무를 이제는 개인이 여러 AI 에이전트와 함께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하면 팀으로 일할 때의 커뮤니케이션 비용도 없어지면서 생기는 생산성 향상도 있을테니, 우리 모두는 점점 더 ‘매니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고, 수행하기를 기대 받을 것이다.

그렇다면 기존의 매니저들은 이 새로운 시대에 어떤 위치를 차지하게 될까? 역설적으로 모두가 매니저가 되는 시대에 기존에 사람을 부리던 인간 매니저의 역할도 새로운 방식으로 바뀔 것이라 생각한다. 이들은 단순한 ‘사람 관리자’에서 ‘인간-AI 생태계 디자이너’ 같은 역할로 바뀌지 않을까. 이들에게 기대되는 역할은 개별 ‘매니저’가 각자의 AI 에이전트를 활용하는 방식을 조율하고, 조직 전체의 AI 인프라와 개별 에이전트가 조화롭게 작동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다. 또한 직원들(=매니저들)이 AI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멘토링하는 역할도 중요해진다. 결국 이 시대의 매니저는 ‘메타 매니저(매니저들의 매니저)’가 되어, AI 활용의 롤모델이 되고 보이고 AI 시스템 활용의 전반을 최적화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과거에는 매니저의 핵심 역할이 사람들을 관리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AI 에이전트라는 ‘디지털 직원’을 어떻게 지휘할 것인가 점점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이는 단순히 AI에게 프롬프트를 던져넣는 것 이상의 업무다. 요즘 AI에서 나온 결과물을 그냥 복붙했다가 망신 당하는 얘기를 주변에서 많이 듣는다. 이런 것은 매니저로서는 실패한 것이다. 매니저라면 AI에게 일단 작업을 정확하게 지시하고, 결과물을 세심하게 검수하며, 결과물의 품질도 평가하고, 잘된 부분과 개선이 필요한 부분을 분별해서 필요하다면 더 명확한 지시와 피드백을 제공하여 재작업도 요청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여러 AI 에이전트들 사이의 작업을 조율하기도 하고, 서로 다른 에이전트 사이에 강점을 모아서 활용하는 방법도 터득해야 할 것이다. 오피스 폴리틱스 (사무실 정치) 관리 대신에 AI 에이전트의 대답들 사이에서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AI가 보편화 되면서 모든 사람이 이런 ‘에이전트 관리자’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 것이고, 모든 사람에게 전통적인 의미에서 매니저로서의 덕목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렇게 모두가 매니저가 되는 시대에서는 어떤 능력이 더욱 중요해질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시스템 설계 능력’이다. 복잡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여러 AI 에이전트들의 작업 흐름을 설계하고 최적화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미 에이전트들을 연결하고 디자인할 수 있는 다양한 도구들이 등장하여 실험을 받고 있다. 각 AI 도구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고 이들을 조화롭게 작동시킬 수 있어야 한다. 또 다른 중요한 능력이 될 것으로 생각되는 것은 ‘메타 판단력’이다. 이는 AI가 제공하는 정보나 결과물의 타당성을 평가하는 것을 넘어, 그 정보가 생성된 맥락과 과정까지 이해하고 비판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이다. 예를 들어, AI가 특정 결정이나 결론을 추천했다면, 단순히 그 결론의 옳고 그름 자체를 평가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AI는 어떤 데이터로 학습했기 때문에 이런 대답을 했을까?”, “내 질문의 어떤 뉘앙스가 이런 대답을 이끌어냈을까?”, “이 답변에 숨겨진 가정은 무엇일까?”와 같은 메타적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또 AI가 생성한 코드가 버그 없이 작동한다고 해도, 그 코드가 왜 그렇게 구성되었는지, 다른 접근법은 무엇이 있을지, 미래의 확장성은 어떤지, 또 이를 위해서는 다시 어떤 질문(=프롬프트)를 던져야 할지 등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연스럽게 질문을 설계할 수 있는 능력도 좋아야 할 것이다.

세부적으로는 이러한 능력들이 중요해진다고 치고, <모두가 매니저가 되는 시대>에는 어떤 사람들이 더 성공(또는 잘 적응)할까? 내가 생각해 본 한 가지는 AI 시대에 특별히 두각을 나타낼 유형은 ‘목적 의식이 투철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AI는 이미 자연어 이해 능력이 많이 발전하였다. 따라서 언어적으로 모호한 지시에서도 사람의 의도를 상당히 정확하게 파악하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어떻게’ 부분에서는 상당히 능숙해 졌다고 볼 수 있지만, 여전히 ‘왜’와 ‘무엇을 위해’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AI가 스스로 대답하기 어려울 것 같다. 자가발전 또는 자기동기부여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목적과 가치를 명확히 하고 그 큰 그림을 바탕으로 AI 에이전트에게 질문을 시작할 수 있는 사람들이 중요해질 것이고 성공하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변화는 사회와 직업 구조에 새로운 형태의 격차를 만들어낼 수 있다. 내가 만약에 책을 쓴다면 “AI 디바이드(AI Divide)”라는 제목으로 지금 시대에 책을 하나 쓰면 잘 팔릴 것 같다. 과거의 “디지털 디바이드”가 정보 접근성, 분석력, 컴퓨팅 파워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사회경제적 격차에 대해서 개념화하였다면, AI 디바이드는 역설적으로 모두에게 동일한 AI 도구와 접근성이 주어진 상황에서 발생한다. 같은 도구를 가지고도 누군가는 이를 체계적으로 활용해 자신의 능력을 수십 배로 확장하는 반면, 다른 이들은 기본적인 활용에 그치거나 심지어 활용하지 못하는 (않는) 상황이 생긴다. 가장 역설적인 점은 AI가 발전할수록 ‘지능(Intelligence)’의 희소성이 감소한다는 것이다. 복잡한 계산, 데이터 분석, 패턴 인식 등 전통적으로 높은 지능을 요구했던 작업들을 이제 AI가 대신해주기 때문이다. 대신 ‘성실성(Conscientiousness)’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AI 시대에는 지속적으로 새로운 도구를 배우고, 꾸준히 자신의 워크플로우를 개선하며, 장기적인 목표를 향해 꾸준히 나아갈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지능(Intelligence)은 그냥 마트와 슈퍼마켓에서 살 수 있는 생필품(Commodity)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처음으로 Contientiousness가 Intelligence보다 더 두드러지게 중요한 시대로 바뀌는 전환점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능이 민주화 됨으로써 말이다.

이렇게 모두가 매니저가 되는 시대에 진정한 승자는 아마 자신만의 AI 에이전트 팀을 구축하고 계속 업그레이드 하면서 이를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개인 기업가(Personal Entrepreneur)’가 될 것이다. 이들은 자신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나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에 맞춰 최적의 AI 에이전트 조합을 구성하고, 이들의 작업을 조율해 높은 수준의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는 대기업의 역할과 미래에 대해서도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모두가 강력한 AI 에이전트를 활용할 수 있게 되면, 대기업의 규모와 자원이 주는 전통적인 이점—규모의 경제, 범위의 경제—이 감소할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조금 생각해 보았을 때, 오히려 대기업은 ‘메타 플랫폼(Meta-Platform)’으로 변화하면서 전통적 의미의 이점이 아닌 다른 의미로서 군집으로서의 이점을 줄 가능성이 높다. 2010년대 초반부터 대두된 경영전략에서 말하는 생태계적(Ecosystem) 관점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들은 개인 기업가들이 더 효율적으로 협업하고, 더 큰 규모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생태계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대기업 내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개인 기업가’로서의 능력을 발휘하면서도, 조직의 비전과 목표에 맞춰 자신의 AI 에이전트 팀을 운영하는 ‘조정된 자율성(Coordinated Autonomy)’을 바탕으로 일을 하게 될 것이다.

나도 그렇고 대부분 그렇겠지만 지금 시대에는 하루하루 불안감과 흥분감을 함께 가지고 살고 있다. AI와 관련해서는 1년이 아니라 매주 새로운 것이 업데이트 되는 것 같다. 20여년 전 대학생 때 제로보드로 홈페이지를 처음 만들 때는 상상도 못했던 세상이 매일 새롭게 펼쳐지고 있는 느낌이다. 레이저 총만 안 쓴다 뿐이지 2020원더키디 보다 어떤 면에서는 더 2020원더키디 같은 세상에 살고 있다. 나는 이 변화 속에서 중요한 것이 AI를 단순히 도구로 정의하는 데 그치지 않고, AI와의 관계 속에서 인간의 역할과 정체성이 어떻게 재구성되는지 이해하는 것이라고 본다. AI가 발전할수록 우리는 단순 작업에서 해방되고 더 고차원적인 의미 창출과 방향 설정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언제나 더 고차원적인 (=메타적인) 문제는 있게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결국 AI가 인간을 완전 대체하기 보다는 인간과 AI의 관계는 계속 상호 함께 발전해 나가는 관계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매니저가 되는 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AI에게 무엇을 시킬 것인가”가 아니라 “AI와 함께 무엇이 되고 싶은가”일 것이다. 이 두 질문의 차이는 미묘하지만 본질적이다. 전자는 AI를 단순히 지시를 수행하는 도구로 본다. 마치 망치를 들고 “이 망치로 무슨 못을 박을까?”라고 묻는 것과 같다. 여기서 AI는 인간의 의도를 실현하는 수동적 도구에 불과하다. 반면 후자는 AI를 공동 창작자이자 동반자로 본다. “이 망치와 함께 어떤 집을 지을 수 있을까?”라고 묻는 것과 같다. 여기서 AI는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가능성을 함께 탐색하고, 우리의 창의적 경계를 확장하는 파트너가 된다.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AI에게 무엇을 시킬 것인가”라는 질문은 현재 우리가 가진 문제와 해결책의 틀 내에서 AI를 활용하는 방법을 찾는다. 이는 이미 정의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효율성 향상에 초점을 맞춘다. 예를 들어 “AI로 어떻게 더 빨리 코드를 작성할 수 있을까?”와 같은 질문이다. 반면 “AI와 함께 무엇이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은 AI의 능력을 통해 우리가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가능성과 정체성을 탐색한다. “AI와 함께라면 어떤 종류의 프로그래머가 될 수 있을까?”, “AI 협업을 통해 어떤 새로운 형태의 창작물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와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는 단순한 효율성 너머, 우리의 인지적 경계와 창조적 가능성, 자아의 확장에 관한 것이 되는 것이다.

결국 AI 시대의 진정한 매니저는 AI에게 일을 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AI와 함께 진화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공동 창조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모두가 매니저가 되는 시대’가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근본적인 도전이자 기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