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 실험을 해서 어떤 물질을 합성한다고 하면, 그 재료가 되는 물질들을 화학 반응시켜서 원하는 물질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두 물질이 고체 상태라면 그 두 가지를 가루 상태로 그냥 섞어 놓는다고 원하는 물질이 만들어지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그런 경우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보통 재료가 되는 물질들은 물에 녹는 형태로 구해서 물에 녹인 후에, 수용액 내에서 재료들이 반응해서 결과물을 만들어 내게 된다. 완성된 물질이 물에 녹는 것이라면 조금 귀찮아 진다. 물을 증발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히 원하는 결과물이 물에 녹지 않는 것이라면 물질이 합성되면서 물 밑에 가라 앉거나 덩어리져서 물 속에 떠다니기 때문에 한결 쉬워진다. 용액을 깔때기를 써서 걸러내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화학 실험에서 걸러낸다는 것이 별달리 특이한 것이 아니라, 커피메이커에서 쓰는 것과 같은 종이필터를 놓고 그 위에 용액을 부어주는 것을 말한다.
커피메이커에서 커피를 만들어 봤으면 알 것이다. 생각보다 물이 빠르게 안 빠진다. 특히 꼬깔 모양의 거름종이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물이 더 안 빠진다. 그리고 따로 물을 빼는 압력이 없다보니까 다 거르고 나서 걸러진 물질도 상당히 축축한 상태로 남게된다. 이런 성가신 과정을 조금이라도 개선하기 위한 것으로 어떤 해결책이 있을까? 물을 빼는 압력이 없는 것이 문제라면 거름종이의 위쪽과 아래쪽 사이에 압력차가 생기게하면 된다.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진공 펌프 같은 것을 깔때기 아래쪽에 달아서 물을 빨아들인다면 확실히 빨리 걸러질 것이다. 마치 입으로 깔때기를 빨아들이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거름질 한 번 하겠다고 실험실마다 양수기 같은 커다란 진공 흡입기를 놔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마 전기세도 많이 나올 것이다. (물론 실험실에 따라서 이렇게 비싼 진공펌프를 쓰는 곳도 있을 것이다.) 진공펌프의 원리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화학실험실에서 많이 사용했던 것은 아스피레이터(Aspirator)라는 간단한 장치다.
이 아스피레이터라는 것도 진공펌프의 일종인데 전기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유체가 흐르는 속도에 따라 발생하는 압력 차이 (벤츄리 효과) 를 활용해서 진공을 만들어내는 도구이다. 위의 사진과 같이 매우 단순하게 생겼다. 위의 사진을 보면 구멍이 있을법한 위치가 총 세 군데 포착된다. 먼저 제일 위에 달린 구멍을 수도꼭지에 연결한다. 그리고 물을 틀면, 아랫 방향 구멍으로 물이 흘러나올 것이다. 그러면 곁가지처럼 뚫린 구멍에서 흡입하는 압력이 생기게 된다. 물론 물과 같이 액체로 작동하는 아스피레이터의 경우 아주 큰 압력차를 만들 수는 없는데, 물 대신 기체를 사용하면 더 강한 압력차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압력이 더 낮은 진공을 만들기 위해서 위와 같은 아스피레이터를 여러 단계로 설치할 수 있다고 한다. 어쨌든 간단한 쇳덩어리와 수도꼭지 만으로 어느 정도의 압력차를 만들어 냈으니 곁가지 같은 구멍을 고무호스로 깔때기 쪽에 연결해 주면 보다 빠른 거름이 가능할 것이다.
지금까지 깔때기의 진화형이라기보다는 간단한 진공펌프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했는데, 이 아스피레이터를 사용해서 거르기를 하는 방법에 대해서 살펴보자. 아스피레이터의 진공이 발생하는 부분을 그냥 바로 깔때기에 연결하면 물론 압력차이가 바로 가해져서 거름은 잘 되겠지만, 빨려 나온 용액이 그대로 하수구로 직행한다는 문제가 있다. 화학실험에서 사용되는 용액 중에 중금속이 들어있는 경우도 많은데 이런 중금속을 그대로 하수구로 버리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의 그림과 같이 조금 복잡해 보이는 깔때기 구조를 사용하게 된다. 위의 그림에서 (c)부분에 아스피레이터의 진공 발생 부분을 연결해준다. 그러면 깔때기의 아래쪽에 붙어 있는 플라스크가 전체적으로 압력이 낮아지면서 깔때기 위의 용액을 간접적으로 빨아들이는 효과가 생기게 된다. 아스피레이터를 설치하고 나서는 (a)와 (d) 같은 부분에서 공기가 새지 않는지 잘 체크해야 하고, 실제 거르기 전에 깔때기를 손바닥으로 덮어 보아서 압력차가 제대로 걸리는지 확인도 해봐야 한다. 용액을 거름종이에 부었는데, 압력차가 제대로 안 걸려있었다면 마치 막힌 화장실을 보는 것과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간접적으로 거르는 이유는 환경오염 이외에 또 하나가 있다. 합성을 했다고 해서 반응이 제대로 갔다는 것은 눈으로 봐서 잘 알기가 쉽지 않다. 때로는 걸러내려고 깔때기에 용액을 부었는데 거름종이 위에 아무 것도 남지 않고 모든 용액이 아래로 빠져버리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 아래 쪽으로 빠진 용액을 다시 모아서 어떻게든 실패한 실험을 되살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이 정도로 실험이 망하면 그걸 모아서 어떻게 살려볼 생각 보다는 그냥 하루 자고 일어나서 새로운 마음으로 처음부터 실험을 다시 하게 된다. 그 밖에 거르는 과정에서 깔때기 벽면에 붙은 것들을 모은다고 증류수를 벽면에 흘려주기도 하는데, 이 때 실수로 증류수 대신 알콜이 든 병을 사용하면 역시 잘 걸러져 있던 화합물일 그대로 녹아서 쓸려 내려가는 것을 보게 된다. 거르는 과정은 단일 단계 합성 실험에서는 거의 마지막 수순이자, 내가 합성한 물질을 깔끔하게 모아서 눈으로 볼 수 있는 첫 순간이라 여러모로 희비가 교차하는 과정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잘 보고 있습니다~ ㅎㅎ실례시지만 학부생인지요?
저도 화학과 학부생인데 글 잘쓰시네요! 부럽..
감사해용~ 아스피레이터는 뭔가되는듯안되는듯ㅋㅋㅋㅋ
그래도 신기할땐 정말신기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