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칼자루를 쥐고 있는가 – KeSPA, KBO, 사법부

우리 사회의 심판들

1. 스타크래프트

(출처: http://news.filefront.com/blizzard-patches-starcraft-and-starcraft-brood-war/)

이틀 전 스타리그 32강에서 박태민 선수가 경기 패배 인정을 할 때 쓰는 “gg”라는 단어를 안 쓰고 이것의 한글 자판인 “ㅎㅎ”를 써서 몰수패를 당했다. 뭐 어차피 졌던 경기였다고는 하는데.

문제는 3판 2선승제라서 2경기를 하는데 시작하자마자 “a”를 채팅창에 입력해서 역시 몰수패. 2연속 몰수패라는 진기록을 세우게 됐다고 한다.

자세한 스토리는 여기를 참고.

2. 프로야구

(출처: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Baseball_umpire_2004.jpg)

지난 12일에는 SK와 LG 경기에서 심판의 석연찮은 판정 때문에 말이 많다.

역시 자세한 사건은 다음 기사 참고. http://www.dcnews.in/news_list.php?code=ahh&id=412907

3. 사법부

(출처: http://www.freefoto.com/preview/31-24-7?ffid=31-24-7)

는 그냥 패스 (라고 쓰면 알아서 행간을 읽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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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의 존재 이유

그 근원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은 뭔가 공평함을 추구하는 욕망이 있는 듯 하다. 공평함이라는게 나는 놀더라도 너랑 똑같은만큼 먹어야겠다는게 아니고, 노력한만큼 먹자. 뭐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인생은 운칠기삼이라고 했던가. 노력한다고 다 잘 되는 것도 아니고, 논다고 다 안 되는 것도 아닌게 세상사이지만, 그래도 인간의 힘으로 컨트롤 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최대한 공평하길 바라는 것 같다.

뭔가가 “공평”하기 위해서는 그 기준이 되는 규칙이 필요하고 그 규칙을 집행해 줄 제3자가 필요해진다. 여기서 심판이라는 역할이 나오는 것 아닐까 싶다. 게임하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너한테 칼자루 줄테니까 규칙 잘 만들어서 억울한 놈 좀 안 나오면서 신나게 놀 수 있게 판 좀 깔아봐”라고 힘을 모아 칼을 만들고 칼자루를 넘겨준다. 이 칼은 원래 디자인 되기를 룰을 안 따르는 사람들을 잡기 위한 것이니까, 게임하는 한 명 한 명이 개인으로는 당할 수 없는 힘을 가졌을 것이다. 아주 힘센 녀석이 나타나서 칼을 무력화 시켜버리면 공평한 게임은 안드로메다로 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그 칼을 존중하고 그 칼이 사용되는 것에 신뢰를 보내야 한다. 그 칼의 힘은 사람들의 신뢰를 먹고 자라기 때문이다. 그 칼은 일종의 상징이기 때문에 신뢰를 잃는 순간 존재 의미도 함께 잃는다.

하지만 칼의 사용이 “규칙”에 따르지 않고 임의적이 되는 순간 사람들의 신뢰는 등을 돌린다. 윈윈하기 위해서는 칼 쓰는 사람이 칼을 제대로 써야한다. 칼자루를 쥔 사람이 ‘내가 이 칼을 왜 들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보다는, ‘내가 이 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 몰두하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 문제가 시작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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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록으로 눈 정화하기

아무튼 이왕 떡밥 하나 잡은 것, 포스팅 쓰면서 인용할만한 어록이 없을까 싶어서  “judge”라는 단어가 들어간 어록들을 뒤적거리다가 Earl Warren이라는 할아버지를 발견했다. 어록이 확 땡기는게 있었다. 몇 개 보자.

  • It is the spirit and not the form of law that keeps justice alive.
    정의를 존속시키는 것은 법의 형식이 아니라 법의 정신이다.
  • Liberty, not communism, is the most contagious force in the world.
    자유 — 공산주의 아님 — 는 세상에서 가장 전염성이 강한 힘이 아닐까 싶군요.
  • Life and liberty can be as much endangered from illegal methods used to convict those thought to be criminals as from the actual criminals themselves.
    삶과 자유는 범죄 자체로부터 위협받는만큼 범죄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잡아내려는 불법적인 방법에 의해서도 위협받는다.
  • The censor’s sword pierces deeply into the heart of free expression.
    검열 = 언론자유 쥐쥐 (발번역)
  • The police must obey the law while enforcing the law.
    경찰은 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도 반드시 법을 지켜야 한다.

이런 폭풍간지를 풍기는 포스는 뭐지? 그래서 그 할아버지의 소스가 확실한 어록을 봤더니 더 대박이다.

  • When an individual is taken into custody or otherwise deprived of his freedom by the authorities and is subjected to questioning…he must be warned prior to any questioning that he has the right to remain silent, that anything he says can be used against him in a court of law, that he has the right to the presence of an attorney, and that if he cannot afford an attorney one will be appointed for him prior to any questioning if he so desires.
    한 개인이 권력기관에 의해서 구금되거나 자유를 박탈당한 후 심문 받을 때, 그는 반드시 다음의 사항에 대해서 심문 전에 고지 받아야 한다.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 그가 말하는 어떤 것이든 법정에서 그에게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다는 것,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다는 것. 그리고 만약 그가 변호사를 선임할 비용이 없는데 선임하고 싶어한다면 심문 전에 변호사를 선임해 줘야 한다.

어?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건데 -_- ‘미란다 원칙도 이 할아버지 어록이었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찾아보니까 미국 14대 “대법원”장이었던 할아버지였다. ㄷㄷ (참고: 미란다 소송 미대법원 판례 링크) 마지막으로 어록 하나만 더 보자.

  • It would indeed be ironic if, in the name of national defense, we would sanction the subversion of one of those liberties — the freedom of association — which make the defense of our nation worthwhile.
    만약 우리가 국가안보라는 명분 하에, 우리가 나라를 지키는 이유인 그 “자유”의 일부 — 결사의 자유 — 가 망하는 것을 용납한다면 그것 참 개그 아닌감.
    출처: United States v. Robel

속된말로 진짜 간지 개 쩌는구나. 당장이라도 로스쿨 지원서를 쓰고 싶게 만드는 이 미칠듯한 포스. 이런 사람들이 대법원에 있으면 정말 사회가 법과 규칙을 우습게 볼래야 볼 수 없지 않을까 싶다.

아마 우리나라 대법관 분들 중에서도 이런 어록이 많이 있을테니까 혹시 아시는 분들은 리플 부탁드립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 대법관 어록을 읽으면 더 감동이 클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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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이미 포스팅은 삼천포를 지나 안드로메다로 흘러왔지만 어떻게 대강 마무리를 지어보자면,

칼자루를 쥐고 있는 사람이 자기가 “왜” 칼자루를 쥐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고, 그 칼자루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만 알고 있으면 다같이 망하는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