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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시인의 사회

Dead Poets Society

죽은 시인의 사회라…

“사회”라기 보다는 “동아리”라는 개념에 더 맞을 듯 하다.

방금 전 영화를 봤는데 나도 고등학교 때 기숙사 생활을 해서인지 너무 감정이 동해서 짧게나마 블로그에 글을 남기고 자려고 한다.

예전에 아버지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대학 들어오고 내가 한창 맨날 친구들과 술먹고 새벽에 들어오고 할 때 해주셨던 말이다. 당시에 내가 삶에 많이 집착하는 모습이었던 것 같다.

“너 인생 하나가 그렇게 중요할 것 같냐. 너 하나 죽으면 가족들이 슬퍼야 하겠지. 그래봐야 몇 날 몇 달이다. 어차피 산 사람은 또 계속 살아야 하는거지. 부시(당시에 미국 대통령이 부시였으니)가 죽으면 세상이 멈출 것 같냐. 서울-대전 KTX라도 연착 될 것 같냐. 하물며 너 하나 세상에서 없어진다고 세상이 뭐 하나 달라질 것 같냐. 네 인생 네가 가꾸는거다. 네가 저기 산 속에 잠깐 폈다지는 꽃이라고 생각해 봐라. 그 산 속에 사람들이 보러 와주지 않는다고 혼자 불평하고 아둥바둥해서 뭐할거냐. 그냥 그렇게 폈다지는 것이 그 꽃의 삶인 것이고 누굴 원망할 것도 아니다. 너는 꽃 피워 보기도 전에 다 상해서 죽을라는거냐.”

이런 비슷한 얘기가 이 영화 초반부에서도 얼핏 나온다. 죽음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인간사.

아버지께서 해주시기엔 조금 야속한 말일 수는 있긴 하지만, 오히려 이런 가르침이 지금 나를 많이 크게 해주었다고 믿고 있다.

세상은 사실 나한테 별 관심 없다는 것. 내 삶의 의미를 내 스스로 부여하지 않는 이상, 나 하나 살든 죽든 어차피 달라지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

역설적으로 내 자신의 하찮음을 느껴야 비로소 남들의 목소리가 아닌 자기 안의 마음의 소리에 따라 살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하찮음이란 결국 어차피 내가 아니면 신경써줄 사람도 없다는 말이니까. 인생이란 것은 자기가 물주고 가꾸고 자기 스스로 만족하는 집 앞 마당의 화단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남들이 이 화단을 어떻게 봐줄까, 여기에 금칠을 해볼까 은칠을 해볼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흔히 말하는 “비교에 의한 불행”의 시작일 것이다.

간만에 다시 흙으로 돌아갈 인생이라는 것을 되새기게 해준 영화였다.

또 다른 나의 Favorite, “패밀리 맨”이나 틀어놓고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