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실험을 한다고 할 때 대표적으로 떠올리는 모습 중의 하나가 위의 사진과 같은 이미지이다. 분석화학에서 주로 하는 실험 중에 하나가 적정(titration)이라는 것인데, 이것부터 먼저 간단히 설명을 하고 넘어가자. 적정은 정량적 화학분석 방법의 하나로 어떤 용액 속에 특정 물질이 얼마나 들어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실험이다. 예를 들어 위의 사진에서 아래 놓인 플라스크에 농도는 모르는 산(acid) 용액이 들어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위의 길쭉하게 생긴 관에 농도를 알고 있는 염기 용액을 채워 놓고, 한 방울씩 넣기 시작한다. 염기가 점점 들어감에 따라서 아래 용액 속에 있는 산의 농도는 낮아진다. 그렇게 계속 넣다가 산이 다 없어지는 시점까지 염기가 얼마나 들어갔는지 확인하여 미지의 산 용액의 농도를 알아내는 것이다. 산이 다 없어지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서, 보통 아래 들어있는 용액에 지시약이라는 것을 넣어놓아서 산에서 염기로 바뀌는 순간에 용액의 색이 변하도록 해 놓는다.
결국 이 적정 실험을 하기 위해서는 위에서 용액을 떨어뜨리는 도구가 필요하다. 이 도구의 조건으로는 첫째로 용액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쉽게 알 수 있어야 하고, 둘째로 흘러내리는 용액의 양을 손쉽게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저번에 소개했던 피펫이라는 도구로 적정을 하게 되면, 얼마나 들어갔는지는 알 수 있을지 몰라도 들어가는 용액의 양을 미세하게 조절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이를 위해 사용하는 도구가 오늘 소개할 뷰렛 (Burette)이다. 뷰렛의 기본적인 생김새는 길쭉한 유리관이다. 다양한 부피가 있던 피펫과 달리 뷰렛은 거의 50ml 짜리였던 것 같다. 길이가 거의 1m 가까이 되어서 생각보다 거추장스럽게 길다. 긴 유리관의 표면에는 50ml에 해당하는 눈금이 인쇄되어 있다. 그리고 한 쪽 끝은 그냥 뚫려있고, 다른 한 쪽 끝은 뾰족하게 되어 있다. 뽀죡한 끝 쪽에 용액의 흐름을 조절하기 위한 밸브가 달려있다. 그러면 뷰렛의 눈금 읽는 법과 밸브 조절하는 법을 차례로 살펴보자.
뷰렛에는 보통 50ml의 부피를 0.1ml 단위로 나눠서 눈금을 표시해 놓았다. 뷰렛에 수은을 채우고 적정을 하지 않는 이상 위의 사진과 같이 용액의 윗부분이 아래로 볼록한 모양을 하게 된다. 뷰렛은 절대적인 눈금 값을 통해서 용액의 양을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두 눈금의 차이로 용액의 양을 측정하기 때문에, 흔히 과학시간에 배우듯이 볼록한 정점에서 눈금을 읽지 않고 용액 표면의 제일 높은 위치에서 눈금을 읽어도 일관되게만 읽으면 별 상관은 없다. 하지만, 유리벽에 달라 붙는 높이가 테두리를 따라 조금씩 달라지므로 역시 오목한 제일 아랫부분에서 읽는 것을 추천한다. 위 사진과 같이 배경이 있으면 눈금 읽기가 조금 어렵게 된다. 이럴 때는 뒤에 흰 종이를 대고 읽으면 조금 더 편해진다. 이렇게 적정을 시작하기 전에 눈금을 읽어 놓고 적정이 끝났을 때의 눈금을 읽으면 그 차이가 들어간 용액의 부피가 되는 것이다. 가끔 적정을 시작하기 전에 눈금을 안 읽어놔서 다시 적정을 해야 하는 삽질을 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이제 용액이 흘러내리는 것을 컨트롤하는 부분을 살펴보자. 뷰렛의 뾰족한 끝 부분에 달린 밸브를 돌리면 긴 관 속에 들어있는 용액이 흘러내려 떨어지게 된다. 위의 사진에서는 오른손으로 밸브를 잡고 있는데, 내 경험으로는 왼손의 검지와 중지 사이에 뷰렛 관을 끼우고 엄지를 함께 사용하여 컨트롤하는 것이 훨씬 안정적이었던 것 같다. 적정이라는 것이 실험자에 따라서 정확도가 크게 달라지는 이유가 이 밸브 컨트롤 때문이다. 뷰렛의 눈금은 0.1ml 단위지만, 한 방울은 보통 0.05ml 정도 된다. 거기에 숙련도가 높아지면 반 방울 또는 1/4 방울까지 컨트롤하게 된다. 한 방울을 반으로 쪼개는 방법은 밸브를 미세하게 열어서 뷰렛의 끝에 물방울이 살짝 맺히게 한 후, 밸브를 닫고 그 맺힌 방울만 플라스크에 묻혀서 집어 넣는 식이다. 실제 적정을 해 보면 한 방울을 딱 넣는 순간에 용액 색깔이 빨간색에서 노란색으로 확 변해버린다. 그 중간인 주황색에서 적정을 멈출려면 결국 반 방울 이하로 컨트롤하는 법을 익히긴 해야 한다.
뷰렛은 그 길쭉한 모양과 좁은 입구 때문에 처음에 채울 때 깔때기를 사용한다. 이 때 밸브가 닫혀져 있는지 꼭 먼저 확인하자. 밸브가 열려 있으면 위에서 붓는 족족 아래로 흘러내린다. 만약 그 액체가 피부에 닿아서 유해하다면 큰일나는 것이다. 뷰렛을 사용할 때 가끔하는 삽질 중에 하나가 용액을 채워놓고 바로 눈금을 읽고 실험을 시작하는 것이다. 용액을 채운 후에는 밸브를 돌려서 용액이 뷰렛의 뾰족한 끝까지 흘러내려서 채우도록 한 후에 눈금을 읽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실험이 끝나고면 뷰렛을 씻어야 하는데, 역시 길쭉한 모양 때문에 수세미 같은 것을 쓰기 힘들어서 증류수를 담아서 눕힌 후에 좌우로 이리저리 흔들어주면서 헹구게 된다. 이 때 씻은 물은 뾰족한 쪽으로 흘려보낸다. 밸브 주변에도 용액이 묻어있었기 때문에 밸브도 여러 번 돌려주자. 뷰렛을 닦기 위해서 길고 가는 모양의 수세미가 있기는 한데, 수용액으로 실험을 했다면 그냥 헹구는 것만으로도 큰 문제는 없었던 것 같다.
(참고: 뷰렛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한 힌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