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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te 395 – 캘리포니아 대장정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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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끝없던 사막길

오늘이 전체 일정 중에 가장 운전을 오래해야하는 날이다. 10시쯤 일어나서 대강 씻고 호텔을 나섰다. 라스베가스는 그냥 중간 기착지 정도였기 때문에 The Strip이라고 불리는 메인 거리는 포기하고 바로 출발했다. 고속도로로 나와서 조금 가다보니 In-and-out Burger라는 햄버거집이 있길래 들어가서 끼니를 대강 해결하고 음료수를 챙겨서 나왔다. (사막을 여행할 때는 마실 것을 항상 잘 챙겨서 다녀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운전도 한 번 움직일 때 100~200km 정도는 가니까 차 안에서 목이 마르기도 한다.) 아무튼 In-and-out은 맥도날드보다 햄버거가 약간 더 충실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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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네비게이션에서 “50마일 간 이후에 좌회전하세요” 이런 식의 안내에는 대강 익숙해졌다. 그런데 진짜 길이 너무 멀었다. 한 번에 150마일 가서 좌회전하라고 했다가 그 다음에는 100마일 더 가서 우회전하라고 하질 않나. 정말 사막이 끝도 없이 계속 되었다. 모하비 사막을 지날 때는 그래도 어느 정도 규모가 정해진 사막이어서 어느 정도 달리면 도시가 또 나오겠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상대적으로 편했는데, 네바다는 그냥 남쪽 전체가 사막인 느낌이었다. LA로 내려오던 길과는 달리 차도 별로 없었다. 고속도로에 차가 별로 안 다니니까 고속도로에 진입하거나 빠져나오는 길이 램프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좌회전/우회전해서 빠져 나오는 구조였다 -_- 그래서 한국에서 흔히 보던 고속도로처럼 고속도로 구간 안에서는 속도제한이 계속 110km/h 인 것이 아니라 마을이나 빠져나가는 출구 쪽을 지날 때는 속도제한이 60km/h 정도로 줄어드는 경우가 많았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해서 정말 고속도로에서 속도를 줄여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했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차가 아주 없는 국도와 더 비슷한 느낌이었다. 한 서너시간 운전을 하니까 Death Valley라는 곳을 대강 지날 수 있었다. 왜 지명이 Death Valley인지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먼 옛날 차도 없던 시절에 어떻게 이런 곳을 지나갔을까 생각해보니 ‘죽음의 계곡’이라는 이름이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여기는 지명을 짓는 작명센스가 너무 적나라하다고 느낀 경우가 많았다. Death Valley도 우리 말로 하면 “죽음의 계곡”… 음. 좀 촌스러운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또 이런 지명을 따서 가게 이름도 짓는다는게 조금 재미있긴 했다. “Death Valley Inn” 이라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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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못 찍었지만 중간에 재미있는 표지판에 몇 개 있었는데, 하나는 “Prison Area: Hitchhiking Prohibited”라는 표지였다. 근처에 감옥이 있으니 히치하이킹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나름 섬뜩 -_- 또 다른 하나는 “낮에도 헤드라이트 켜는 구간: 앞으로 150마일”이라는 표지였다. 햇빛도 세고 길이 워낙 직선도로라서 멀리 있는 차가 라이트를 켜지 않으면 가까이 와야 확인할 수가 있었다. 햇빛을 받아서 도로가 이글거리면서 생긴 아지랭이 때문에 멀리 있는 자동차 라이트가 깜빡거리는 것처럼 보여서 경찰인줄 알고 놀라기도 했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까 다신 네바다에서 캘리포니아로 다시 넘어왔다. 재미있었던 것이 네바다 쪽 도로는 포장이 좀 거칠거칠했는데, 캘리포니아로 들어서자마자 포장이 아주 매끄러워졌다.

2. 시에라 네바다 산맥 (Sierra Nevada Mountains)

오늘은 산맥을 하나 넘어야 하는데 운전을 하다가 저 앞에 있는 산을 바라보면서 ‘설마 저거를 넘어야 되나’ 라고 생각하면 약 1시간 후 쯤 거기를 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이 과정이 한 서너번은 반복되었던 듯 싶다. 사실 처음에 여기가 말로만 듣던 로키산맥인줄 알았는데, 여기는 그냥 듣보잡 산맥(아주 듣보잡은 아니고 시에라 네바다 산맥)이었다 -_- 나중에 지도를 찾아보니 로키 산맥은 네바다 동쪽에 있는 산맥이었다. 이런 듣도 보도 못한 산맥이 이렇게 높고 험하면 로키 산맥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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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간판은 달리는 내내 종종 봤는데 무슨 내용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야생 소가 나온다는 건지 야생 사냥터라 조심하라는 건지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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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덮힌 산과 사막 같이 황량하고 건조한 땅을 한 풍경으로 동시에 본다는 것도 참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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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진짜 인적이 드물어지기 시작했다. 주변에 마을은 커녕 마주오는 차도 별로 없었다. 서울-대전 거리를 2시간 동안 달리는데 마주오는 차 11대 봤다. 차가 하도 없어서 숫자 세는 것도 가끔 까먹을 정도였다. 이런 곳에 고속도로를 깔아 놓은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꼬불꼬불한 산길에 차가 너무 없으니 상대편 운전자가 험하게 운전해서 내려오면 사고가 나겠다 싶어서 커브를 돌 때마다 경적을 울렸다. 역시 교통사고는 나 혼자 조심한다고 안 나는게 아니라 어느 정도 운 또는 팔자다 싶은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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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산맥을 넘으면서 도로의 꼭대기에는 Summit이라고 고도를 표시해 놓았다. 사진 찍은 것 중에서는 6000ft (대략 1800m) 가 가장 높은 곳인데, 실제로 넘으면서 봤던 곳 중에서는 8000ft (약 2400m, 거의 ‘백두산 고개’ (?)) 도 넘는 고개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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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고속도로를 깔아 놓은 것은 대단하다고 할만한데, 문제는 그 높은 산에 길을 내면서 가드레일을 설치를 안 해 놨다는 것이었다. ‘그냥 떨어지면 죽든지’ 뭐 그런 분위기였다 -_-; 진짜 이런 산에서 죽으면 소리소문없이 조용히 가는 거구나 싶은 생각이 번뜩 들면서 조금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어제는 넓은 땅과 자연을 보고 감탄을 했다면, 오늘은 그것이 두려움으로 바뀌어서 다가왔다. 다만, 한 가지 놀라웠던 점은 그런 산 한 가운데 드문드문 컨테이너로 만들어진 집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사람이 살고 있지야 않겠지만, 이런 깊은 곳 까지 사람의 흔적이 남아있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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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이 정말 없는 길을 달리다 보니까 혼자서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노래 가사를 음미하면서 옛날 생각도 좀 하고 그랬다. 산맥을 2/3 정도 넘었을 때 돌아온 길을 잠시 돌아보려 쉬었다. 산이 정말 이건 “민둥산”이라고 부르기도 뭐하고, 그냥 황무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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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높은 언덕(? 산?)을 넘다보니까 고도에 따라서 식물군이 바뀌는 것도 조금 느낄 수 있었다. 조금 낮은 쪽에서는 건조해서 거의 황무지 같다가 고도가 높아지면 추워져서 그런지 침엽수 지대가 나타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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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이 지대를 빠져 나오면서 보니 여기가 INYO National Forest인가 하는 국립산림지대였던 모양이다. 아무 것도 조사하지 않고 출발했던 여행이었지만, 역시 여행이라는 것은 의외의 것들을 마주치는데 즐거움이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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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고비의 언덕을 넘고 나니 이제 정말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눈이 새하얗게 덮힌 높은 산이 나타났다. 멀리서 그 산을 향해서 다가가던 그 웅장한 느낌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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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Route 395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넘고 나니 Bishop이라는 마을을 지나게 되었다. 뭔가 산을 넘을 때와는 달리 평화로운 마을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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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산맥을 대강 넘고 나니 Route 395라는 고속도로를 타게 되었다. 지난 번에 Bob에게 이런 여행을 떠난다고 했을 때 경치가 좋다고 추천을 해줬던 길이라서 여행 코스에 넣었다. 처음에는 이게 뭐가 풍경이 좋다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달렸다. 뭐 나름 왼쪽에는 눈덮힌 높은 산맥이 버티고 있었고, 오른쪽 멀리에는 내가 오늘 하루 종일 넘어왔던 산맥이 보여서 풍경이 나쁘지는 않았다. 지대자체가 약 4000피트(1200미터) 정도로 날씨도 추운 편이었다.

그렇게 또 한 시간 달리다 보니까 “Scenic Route: Begin (경치 좋은 길: 시작)” 이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아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구나’ 싶었다. 나중에 지나서 안 것이지만, 그 Scenic Route가 약 50마일은 되었던 것 같다. 시작은 이 때까지와 별 다를바 없는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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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더 가지 않아서 Vista Point (전망 지점(?))가 나오길래 차를 잠깐 세웠다. 안내 표지판을 보니 그냥 눈 덮힌 산이 아니라 빙하-_-라고 써 있는걸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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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앞에 있는 산이 높이가 13,000ft (약 3,900m)도 넘는 것으로 씌여있었다. 음.. 그럼 여기는 얼마나 높은걸까 -_- 라는 생각을 잠깐 했다. 산 이름은 Mt. Tim(맞나?) 이라고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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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쪽 산들이 도로의 왼쪽 편에 있는 산들이고, 도로의 오른쪽에는 내가 넘어온 산맥이 쭉 이어졌다. 오른쪽 편 산들은 꼭대기가 좀 둥글둥글했다. 옛날에 지구과학 시간에 빙하의 종류에 V자 U자 뭐 그런 얘기를 얼핏 들은게 생각이 났지만 정확하게 기억은 못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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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놀라웠던 것은 이런 험준한 산맥에도 마을이 어느 정도 형성이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하긴 사막에 택배도 보내는데 기본적인 인프라야 되어 있겠지.’ 라는 생각이 들긴했지만 심심하지 않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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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달리니 조그만 호수들도 몇 개 지나쳤다. 그 중 하나에서 찍은 사진들. 그 자리에서 찍을 때는 호수와 자연이 너무 커서 사진기에 잘 안 들어가는 것 처럼 보였는데, 막상 돌아와서 정리하며 보니까 사진이 꽤 잘 나왔단 걸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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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중에 설산에 아담하게 둘러쌓인 (나쁘게 말하면 완전 음지 -_-) 마을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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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동안 눈 덮힌 소나무 숲도 나오고, 호수도 나오고, 산이 감싸 안은 듯한 마을까지 정말 생전 보기 힘들었던 거대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경을 지겹도록 보면서 달렸다. 이 때까지 사막만 보면서 달렸던 것을 충분히 보상하고도 남을 풍경들이었다. 마치 험한 산맥을 넘어오느라고 고생했다고 자연이 주는 선물을 받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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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Tahoe로 가던 마지막 산길

Scenic Route가 끝날무렵 해가 져서 더 이상 사진은 못 찍었다. 기본적으로 이 여행을 떠나면서 해가 지고 나면 최대한 운전을 안 하도록 원칙을 세웠었는데, 오늘은 달리는 길이 워낙 길어서 밤길을 어느정도 달릴 수 밖에 없었다. 약 1시간 반 정도 더 가야하는 정도에서 해가 완전히 졌던 것 같다. 저녁이고 나발이고 이러다 Tahoe에 도착 못하면 길에서 자야된다고 생각하면서 서둘러 갔다.

다시 네바다를 잠시 거쳤다가 Tahoe로 들어서는 계곡 길에 들어섰다. Tahoe는 캘리포니아에서 스키를 타는 장소로 나름 유명한 것 같던데, 늦게까지 눈이 있는 이유가 고지대여서 그렇다는 것을 차를 몰고가면서 느꼈다. 산 능선을 따라서 꼬불꼬불 왕복 2차선 도로를 내놨는데, 그 꼬불거리는 길만 30분 넘게 달린 것 같다. 이게 밤 중에 산 중의 꼬불꼬불한 길을 달리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무서웠다. 가로등까지는 바라기도 힘들고 의지할 것은 자동차 라이트와 반사판에 반사된 빛들 뿐이었다. 주변에 마을도 없는지 낭떠러지인지 불빛도 하나도 안 보였다. 이런 길에서는 뒷차가 조금 빠르게 몰아부치면 앞으로 추월시켜주는 것도 일이었다. 예전에 고등학교 선배 한 분께 미국 자동차 횡단 여행에 대해서 여쭤봤을 때 꼭 하나 지켜야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신 것이 ‘해 지고 나면 운전하지 마라’ 라는 원칙이었다.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온 몸으로 느끼며 운전했다. 확실히 하루 10시간 운전 스케쥴은 무리인 것 같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그 길을 통과하고 나서 South Lake Tahoe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혹시 먹을 것이 없나 둘러보았는데 역시 맥도날드가 있어서, 체크인을 하고 맥도날드 한 세트를 사다 먹고 바로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