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학교에서 스승의 날 비슷한 행사를 했다. (Faculty appreciation day인가 뭔가.) 여기는 날짜가 딱 정해져 있다기 보다는 대강 알아서 눈치껏 챙겨주는 분위기인듯. 아무튼 이걸 같은 학번의 Carol이라는 친구가 준비했는데, 그저께 수업 시간에 갑자기 나한테 “너 내일 기타칠래?” 이러는 것이다. 예전의 나 같으면 당연히 뺐겠지만, 이제는 가볍게 알겠다고 하고 집에가서 준비를 조금 했다.

내가 원래 생각했던 것은 “스승의 날 행사” 이런 프로그램 중에 한 5분 떼어내서 내가 기타를 치는 것일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어제 가보니까 그냥 로비에 카드와 꽃들, 다과를 진열해 놓고 교수님이 시간 날 때 오시면 인사하고 꽃도 드리고 사람들끼리 이야기도 나누고하는 그런 식의 자리였던거다. 일정으로 잡힌 시간은 11시 반 ~ 12시 반이었다. 생각했던거랑 조금 다르길래, Carol한테 물어봤다. “나 언제 치면 되는거야?” “지금 시작하고 싶으면 시작해.” “지금? 여기서?” “응”

사실 사람들이 얘기하는 북적북적한 로비인데 누가 귀기울여 주겠냐 싶긴했지만, 이왕 기타도 들고 왔는데 스피커를 놓고 로비 한 쪽 구석에서 치기 시작했다. 무대에서 공연을 했다기 보다는 파티의 배경음악 또는 까페 앞에서 노래부르는 사람 같은 그런 역할이었다. 곡을 두 개만 준비해서 갔는데, 실컷 자리깔고 두 곡 치고 돌아오기는 조금 어정쩡해보여서 그냥 두 곡을 무한반복했다 -_-ㅎㅎㅎ 그 두 곡은 Cavatina와 Sunday Morning Overcast였는데, 그래도 중간중간에 와서 ‘연주하느라 수고가 많다’, ‘곡 좋다’ 이런 이야기 해주는 사람들이 간간히 있어서 나름 뿌듯하긴 했다. 배경음악을 연주하는 역할일 줄 알았으면 몇 곡 정도 더 대강이라도 연습해서 갔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은 좀 있다.

집에 와서 생각해 보니 어떻게 보면 조금 당황스러웠을 수도 있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준비했던 분위기도 아니었고 별로 귀기울여 준 사람도 없었지만, 그런 당황스러운 느낌은 별로 못 느낀 것 같다. 좀 더 어렸다면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을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런 마음이 안 드는 것을 보면 이제 나이를 먹어가긴 하나보다. 낯이 두꺼워지는 걸 보니 말이다. 오히려 내가 연주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준 것이니까 Carol에게 고마움도 느꼈다.

아마추어라는 것의 장점은 아무데나 얼굴을 디밀 수 있다는 것 아닐까. 프로는 자기 자신의 이름을 걸고 일을 하지만, 아마추어는 그냥 재밌으니까 하는거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런 기회가 있으면 빼지말고 잡아야 한다. 어렸을 때는 왜 이런 걸 모르고 왜 그렇게 무작정 빼기만 했는지. 못 한다고 누가 욕할 것이며, 욕 좀 들으면 어떤가. 어차피 아마추어인데. 프로는 아무 일이나 맡아서 하다가 체하기라도 하면 공든탑 무너뜨리기 쉽다. 이래서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 삼고, 두번째로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라는 이야기를 하나보다. 다들 프로가 아름답다고 말하지만, 오늘만큼은 아마추어로서 즐거웠다. 아마추어의 미학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한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