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chelation

화학계의 집착쟁이 & 끈끈이 풀 – EDTA

Attachment is the great fabricator of illusions; reality can be attained only by someone who is detached. — Simone Weil (French social Philosopher, Mystic and Activist in the French Resistance during World War II. 1909-1943)

집착은 환상을 만들어낸다. 삶에 초연한 사람만이 현실을 볼 수 있다. — 사이먼 웨일 (프랑스 사회철학자, 2차대전 당시 레지스탕스로 활동)

EDTA의 분자구조 - 출처: wikipedia

화학실험에 사용되는 물질 중에 EDTA (‘에드타’가 아니라 ‘이-디-티-에이’) 라는 것이 있다. 본명은 에틸렌디아민테트라아세트산(ethylenediaminetetraacetic acid)이다. 이름이 참 지저분하다. ‘김수한무두루미와거북이삼천갑자동방삭…‘ 이렇게 시작하는 이름을 보는 듯하다. 하긴 화합물들은 조금만 구조가 복잡해지면 이렇게 이름이 쉽게 길어진다. EDTA는 긴 이름만큼이나 중고등학교 화학책에서는 보기 힘든 꽤 복잡한 구조를 가졌다. 위 그림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부분은 두 가지다. 첫째는 분자구조가 전체적으로 매우 어여쁜 대칭형이라는 것이다. 둘째로는 가운데 쯤에 있는 질소원자(N) 2개와 테두리 쪽에 있는 산소원자(O) 4개를 주목해야한다. 그리고 그들이 적절한 거리로 떨어져 있다는 것도 함께 기억해두자. 참고로 위의 구조식에서 꺽어진 선들의 꼭지점에는 탄소(C)가 생략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면 이 EDTA가 왜 화학계의 집착쟁이이자 끈끈이 풀인지 살펴보자.

EDTA는 실험실에 가보면 플라스틱 통 속에 흰색 분말로 들어있다. 가루상태를 그대로 다른 물질과 반응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니 물에 녹여서 사용한다. 찬물에도 잘 녹는다. 일단 물에 녹고 나면 제일 위 그림의 구조에서 제일 가장자리에 달려 있는 수소(H)들은 H+가 되어 물 속에 녹아버린다. 따라서 용액 속에서 EDTA는 마이너스 4가 이온 (EDTA 4-)으로 활동한다. 이렇게 이온이 된 EDTA는 철(Fe), 구리(Cu)등 금속이온을 너무 좋아한다. 같은 용액 속에 들어 있다 싶으면 덥썩덥썩 물어제낀다. 아래 그림을 보면 EDTA의 덫에 걸린 불쌍한 금속 이온을 볼 수 있다. 이 때 금속을 잡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앞에서 기억해두라고 했던 질소와 산소원자들이다. 질소와 산소는 탄소에 비해서 전자를 훨씬 더 좋아해서 탄소와 자기 사이에 있는 전자를 자기쪽으로 은근슬쩍 끌어놓는다. 그에 비해 금속이온은 보통 + 전하를 띄고 있으니 서로 궁합이 ‘척’하고 맞아서 들러붙어버리는 것이다.

EDTA에 물린 금속이온 - 출처: wikipedia

이렇게 EDTA는 금속이온들을 덮어버리는데 사용된다. 왠만한 금속이온은 EDTA에 다 잡힌다. 칼슘(Ca++) 이온과 같은 가벼운 금속이온부터 수은(Hg), 크롬(Cr) 같은 중금속도 예외는 없다. 게다가 비율도 항상 1:1로 결합한다. 일부일처제를 고집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용액 속에 금속 이온이 얼마나 들어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EDTA를 사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용액에서 샘플을 취한 후에 ‘EDTA 10개를 넣었을 때 금속 이온이 모두 사라졌으니, 원래 용액에 금속 이온이 얼마나 들어있겠구나.’ 이런 식으로 계산을 하는 것이다. 그 밖에도 어떤 실험을 해야되는데 특정 금속이온이 방해가 될 것 같을 때도 EDTA를 사용할 수 있다. EDTA로 원치 않는 금속이온을 보쌈해버리는 것이다. 일단 보쌈을 당하고나면 금속이온은 원래라면 여기저기 끼어들어서 반응할 상황에서도 조용히 있게 된다.

이런 식으로 금속을 보쌈하는 것을 일컬어 킬레이션(chelation)이라고 하며, EDTA와 같이 킬레이션에 사용되는 물질은 킬레이트제(chelate劑)라고 부른다. 우리말로 번역된 용어로는 ‘집게고리감‘이라는 것이 있으나 그다지 친근한 번역은 아닌 것 같다. “킬레이트”라는 말은 고대 그리스의 “집게”를 뜻하는 단어에서 유래했다. 1920년 경에 chelate라는 단어로 확실히 정착했다. 단어의 의미는 “랍스터나 게가 가지고 있는 커다란 집게”다. 위의 그림을 보면 느끼겠지만, 상당히 잘 지은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EDTA가 금속을 잡는 모습을 질소원자(N)들을 중심으로 산소원자(O)들이 집게가 되어 금속을 잡아들이는 모습으로 바꿔서 상상해 보자. 아래와 같이 고철 집게가 고철을 집어드는 이미지가 상상되지 않는가?

edta
고철집게에 비유한 EDTA

생각이 재빠른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수은 중독 됐을 때 EDTA 용액 마시면 되는건가?’ 나도 예전에 혼자서 이런 생각을 했다가 피식 웃고 말았던 적이 있다. 그런데 오늘 글을 쓰면서 찾아보니 정말 EDTA를 사용한 치료법이 있었다. 이름하여 킬레이션 요법으로 수은이나 납중독의 치료에 사용되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1991년에는 미식약청에서도 인증한 치료법이라고 한다. 다만, EDTA를 직접 마시라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우리 몸이 생명으로 살아가는데는 칼슘이온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EDTA를 퍼마시게되면 중금속 중독은 나아질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저칼슘증(hypocalcemia)으로 사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활에 활용하는 것이 화학공부의 재미 중에 하나지만, 책에서 공부한 화학을 생활에 너무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소중한 생명을 다치게 할 수 있으니 항상 주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