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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는 원자핵 주변을 돌지 않는다

“The hypotheses we accept ought to explain phenomena which we have observed. But they ought to do more than this: our hypotheses ought to foretell phenomena which have not yet been observed.” — William Whewell (1794-1866) English mathematician, philosopher.

“우리가 받아들이는 가설이 우리가 관찰해 온 현상을 설명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가설은 그 보다 더 나아가서 아직 관찰되지 않은 현상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 윌리엄 웨웰 (1794-1866) 영국 수학자, 철학자

1. 돌턴 - 원자설

원자 모형은 약 200년에 걸쳐서 서서히 정교하게 발전해 왔다. 원자 모형 발달한 과정만큼 과학에서 가설 설정과 검증 과정을 잘 보여주는 것이 또 있나 싶다. 19세기 초에 돌턴이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원자라는 개념에 대한 이론을 제시하였다. 돌턴의 원자설의 핵심적인 내용은 모든 물질은 더 이상 쪼개질 수 없는 “원자”라는 기본 단위로 이루어져 있으며, 화학 변화가 일어날 때 원자의 종류 자체는 변하지 않고 원자 간의 결합만 바뀐다는 것이었다. 지금으로서는 중학교에서 배우는 기본적인 내용이지만, 당시로서는 걸작이라고 할 수 있을만한 통찰력이 아니었나 싶다. 내 생각에는 연금술에서 현대 화학으로 넘어오는 전환점이 바로 이 돌턴의 원자설이었던 것 같다. 연금술에서는 고철로 금을 만들려고 하고 있었는데, 돌턴의 원자설이 화학 반응을 통해서 원자의 종류가 바뀌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못 박았기 때문이다. 당시 기술로는 원자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아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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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톰슨 - 전자 발견 후, 푸딩 원자 모델 제안 (Wikipedia)

그로부터 100년 뒤에 톰슨이라는 과학자가 원자보다 더 작은 전자라는 입자를 관찰하는데 성공한다. 원자의 구조를 알아내는 첫 걸음을 디딘 것이다. 20세기에 꽃피운 전기전자공학의 서막을 알리는 발견이었다. 이로써 전자를 화면에 쏘아서 그림을 만들어내는 브라운관을 사용한 텔레비전도 가능해진 것이다. 톰슨경은 이 전자의 발견으로 노벨상까지 받게 된다. 일단 전자가 발견되었으니 기존의 돌턴 원자모형의 수정은 불가피해졌다. 톰슨이 제시한 모형은 이른바 푸딩 모델이었다. 전자라는 입자가 있는 것은 알겠는데, 원자 자체는 전체적으로 중성이니까 전자의 (-)를 중화할 수 있는 뭔가가 원자에 또 있는 것은 분명했다. 그래서 마치 푸딩에 건포도가 쏙쏙 박혀있는 것과 같은 원자 모형을 제시한 것이다. 전자를 제외한 원자는 푸딩처럼 (+) 전하를 전체적으로 나누어서 띄고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 모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수정되게 된다.

3. 러더포드 - 원자핵 발견

우선 골드슈타인에 의해서 양성자가 발견되면서 푸딩 모델은 1차적으로 수정되었다. (+)전하가 푸딩에 넓게 퍼져있는 것이 아니라, (+) 전하를 띠는 양성자와 (-) 전하를 띠는 전자라는 알맹이들이 어떻게 엉겨붙어 있는 모델로 바뀐다. 여기에서 양성자들은 원자 한 가운데 모여있고 전자가 그 주변에 있다는 모델로 바뀌는 실험이 흥미롭다. 러더포드라는 과학자가 실험을 했다. 우선 금으로 매우 얇은 호일을 만들어서 세워 놓는다. 너무 얇아서 원자 수준에서 봤을 때도 서너 겹 정도 밖에 안 될 정도로 얇게 만든다. 여기에 (+) 전하를 띤 알파 입자를 쏴서 그 입자가 어디로 튀는지 관찰하는 실험이었다. 이전 원자 모델처럼 (+) 전하가 원자 내부에 불규칙적으로 존재한다면, 알파 입자는 특별한 규칙 없이 아무렇게나 산란되어야 했다. 하지만 실험 결과에 따르면 대부분의 알파 입자는 금박을 관통했으며, 아주 극소수만 거의 정반대로 튀거나 아주 큰 각도로 산란되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종이에 대고 총을 쐈는데 총알이 튕겨서 되돌아 오는” 것에 비유했다고 한다. 이 실험에 따라 원자 내부는 대부분 텅 비어 있고, 아주 작은 부분에 (+) 전하가 모여 있다는 가설이 더 적합하게 된 것이다.

4. 보어 - 전자 궤도

이제 원자 내부 구조에서 (+) 전하를 띄는 쪽은 원자핵에 모여있다는 식으로 대강 정리가 됐다. 이제 다시 전자에 대해서 생각해 볼 차례였다. 전자는 그럼 그냥 원자핵 주변을 지구 주변의 인공위성들처럼 아무 위치에서나 그냥 돌고 있는 것인가? 이에 대해서 보어가 새로운 가설을 내 놨다. 원자 내에서 전자가 돌 수 있는 궤도는 딱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는 마치 지구 주변의 인공위성은 고도가 100km, 200km와 같은 곳에서만 돌아야 한다고 규정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보어가 이런 원자 모형을 내 놓은데에는 그와 관련된 실험이 있었다. 원자는 빛과 같은 에너지를 흡수하면 그냥 흡수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에너지를 다시 방출한다. 그런데 흡수하고 방출하는 에너지의 크기가 일정하게 딱딱 끊어지는 것을 관찰했던 것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보어는 전자가 돌고 있는 궤도가 일정하게 정해져 있으며, 그 궤도 이외에서는 전자가 존재할 수 없다는 가설을 세우게 된다. 이 가설은 관찰된 수소원자 스펙트럼을 너무 딱 맞게 설명해냈다.

5. 양자역학 - 파동으로서의 전자

하지만, 보어의 원자모형은 결정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전하를 띠는 입자는 가속도 운동을 할 경우에 전자기파를 방출한다. 원운동은 가속도 운동이고, 전자기파는 그 자체가 에너지다. 결국 전자가 궤도를 돌면서 전자기파를 방출하게 되면, 에너지를 서서히 잃으면서 원자핵으로 충돌해서 원자 자체가 붕괴 되어야 한다. 그런데 다들 멀쩡하게 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보어는 이 문제를 “전자가 정해진 특정 궤도에서 돌 때는 전자기파를 방출하지 않는다”라는 조건을 달아서 넘어갔다. 하지만 당연히 석연찮다. 그 뒤로 양자역학이 태동하고 발전하기 시작했다. 모든 물질과 에너지는 파동성과 입자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며, 전자도 예외는 아니라는 것이 양자역학의 설명이다. 전자가 지구처럼 덩어리로 태양 주변을 돌고 있는 것이 아니라, 파동으로서 원자 주변의 지정된 궤도를 중심으로 확률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가설은 전자현미경이 실현되면서 검증된다. 즉, 전자들은 원자핵 주변을 돌고 있는 것이 아니다. 마치 분신술을 쓴 것처럼 원자핵 주변의 정해진 구역 내의 모든 지점에 동시에 존재할 뿐이다. 이를 전자구름이라고 부른다.

(그림 출처: http://darkwing.uoregon.edu/~ch111/L5.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