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부터 기숙사에서 살고 군대도 다녀 오면서 집에서 나와 사는 것 자체에 대한 어색함은 내게 별로 없는 듯 하다. 다만, 요즘처럼 혼자 밥 해먹고 사는 것은 처음이다. 그러다보니 몇 가지 느낀 점이 있다.
- 갓 한 밥은 진짜 맛있다.
집에서 밥을 먹을 때나 음식점에서 공기밥을 먹을 때는 잘 몰랐던 갓 지은 밥의 맛있음을 느껐다. 갓 지은 밥은 김만 있어도 한 끼를 맛있게 먹을 수 있게 해주더라. - 전기밥솥은 생각보다 유능하다.
예전에는 밥솥은 밥만 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만두도 쪄 먹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_-; 오늘 감자도 좀 사왔는데 다음에는 감자도 한 번 쪄 봐야겠다. - 밥 하는 것 보다 밥솥 씻는게 더 귀찮다.
역시 뭐든지 시작하는 것 보다 마무리 짓는 것이 더 힘들다는 자연스러운 진리를 밥솥 설거지 하면서 느꼈다. 특히 밥솥에 딱딱하게 말라붙은 밥풀을 떼내는 것은 생각보다 귀찮다. 그래서 보통 밥을 다 먹으면 그 다음날은 만두를 쪄서 먹는다. 만두를 찌면서 밥솥 벽의 밥풀을 불리는 1타2피의 생활의 지혜를 터득. - 생각보다 반찬 많이 필요없다.
사실 필요없다기 보다는 반찬을 이것저것 하는 귀찮음이 반찬을 먹는 즐거움을 압도한다는 표현이 맞을 듯. 보통 한 끼 반찬이 두 종류를 넘는 경우가 드물다. (반찬에 라면도 포함 -_-) - 싱크대가 작으면 설거지를 자주해야 된다.
설거지가 좀 귀찮은데 지금 사는 집의 싱크대가 작아서 미뤄두는 것이 좀 어렵다. 하긴 설거지를 미룰만큼 그릇이 많지도 않다. - 냉장고의 내용물은 줄어들기 보다는 계속 늘어나서 쌓인다.
항상 왜 집의 냉장고는 뭔가로 가득 차 있고, 어머니께서는 왜 냉장고 정리를 안 하시나 싶었는데, 그게 자연스러운 것이었음을 깨닫고 있다. - 있으면 있는대로 먹고 없으면 없는대로 안 먹는다.
이사온 초기에 먹을게 하나도 없을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는 먹을 것을 구하기 보다는 그냥 안 먹게 됨을 알 수 있었다. 반대로, 뭔가 먹을게 있으면 끼니가 아니어도 계속 먹는다. - 과일이 진짜 맛있게 느껴진다.
예전에 집에서는 과일을 그래도 많이 먹을 수 있어서 몰랐는데, 한 동안 별로 안 먹다가 오늘 좀 사와서 먹어보니까 정말 맛있다. 과자 같은 것 보다 훨씬 맛있는듯 ;; - 집이 서향이면 저녁 때 덥다.
이거 뭐 당연한 거긴 한데 -_- 그래도 역시 북반구에서는 남향 집이 이래서 좋다고 하는구나 싶다. 뭐 블라인드가 있어서 별 문제는 없긴 함. - 3분 카레, 3분 짜장, 3분 하이스 등등 3분 요리가 식단의 다양성에 큰 기여를 함.
진짜 혼자 살 때는 귀찮은게 제일 큰 적인듯 하다. 3분 요리 덕분에 그래도 밥을 덜 질리게 먹는다.
생각나는대로 써 봤는데 써 놓고 보니 당연한 것 같기도 하고. 음. -_- 아무튼 조금씩 살림 실력이 늘어가는 것 같기는 하다. 오늘 감자 같은 직접 요리해야 먹을 수 있는 식재료도 사온 걸 보니까 말이다. 앞으로 요리도 조금씩 해 보면서 실력을 더 쌓아야겠다. 영우는 얘기 들어보니 이제 혼자서 된장국도 어렵지 않게 끓이고 한다는데, 나는 된장국 재료도 모르니. -_- 동생만도 못한 형이 되지 않으려면 살림도 좀 더 열심히 해야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