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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영이 형 추천 도서. 목소리 톤이 너무 착해보이려고 한달까 너무 아들/딸에게 이야기하는 느낌이라서 중간중간 닭살이 좀 돋긴했지만, 고전들에 대한 좋은 포인터인듯. 그리고 해석이 좋아서 기억해두고 싶은 부분들도 중간중간 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책들은 유시민 씨가 지금 내 나이 보다 조금 더 젊을 때 읽었던 것들이라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20년 뒤의 내가 길을 잃었을 때 돌아볼 수 있는 책들을 읽고 있는가? 미래의 나를 위한 독서를 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게 된다. 소개된 책들 중에서 “맹자”, “유한계급론” 등이 특히 관심을 끌었음. 그나저나 Leisure Class가 왜 “유한계급”으로 번역되었는지 모르겠음. “유한”은 Limited라는 느낌이 더 강한 것 같은데.
길을 잃었다. 많은 친구들이 함꼐 여정을 떠났지만 갈림길을 지날 때마다 차례차례 다른 길을 선택해 멀어져 갔다.
도스토옙스키 – “죄와 벌”: 20세기 세계사는 소수의 ‘비범한 사람들’이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을 구원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리영희 – “전환시대의 논리, 기자 풍토 종횡기”: … 처음에는 어색하고 어울리지 않거나 돼먹지 않았다고 생각하던 기자도 얼마쯤 혼탁한 물에서 헤엄치다 보면 의식이 달라진다. 면역이 된다. … 여기서부터 그의 의식구조와 가치관은 지배계급의 그것으로의 동화 과정을 걷는다. … 모든 것이 ‘가진 자’의 취미와 입장에서 취재되고 기사화된다. ‘지배하는 자’의 이해와 취미에서 신문은 꾸며진다.
멜서스 – “인구론”: 멜서스의 인구론은 단순한 관찰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의 유력한 철학이자 세계관이며 사회 이론이다. … 멜서스의 이론은 실로 단순 명쾌하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 … 전염병을 피하면 전쟁이, 전쟁을 피하면 전염병이 덮친다. 요행히 둘 다를 피하면 대기근이 찾아든다. 셋 모두를 피할 수는 없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과 일치하며 논리적으로 완벽한 주장이다. … 시간이 흐르면서 자유권적 기본권과 아울러 사회권적 기본권도 인간의 천부적 권리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멜서스는 자연법에 의해서 성립되는 권리는 재산권 한 가지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 멜서스의 인구법칙을 이렇게 바꾸어보자. “인구는 꾸준히 증가하며 1인당 에너지 사용량과 폐기물 배출량은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지구 행성의 온실가스 처리 능력과 생태계 재생 능력은 일정하게 유지되거나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 생각은 때로 감옥이 될 수 있다.
푸쉬킨 – “대위의 딸”: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 힘든 날들을 참고 견뎌라 / 기쁨의 날이 오리니 //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 현재는 언제나 슬픈 법 / 모든 것 순간에 지나가고 / 지나가 버린 것 그리움 되리니.” … “상관에게 복종하되 비위를 맞추려고 안달하지는 마라. 옷은 처음부터 곱게 입어야 하고 명예는 젊어서부터 지켜야 하느니라.” … 데카브리스트의 반란은 세계 역사에서 달리 비슷한 예를 찾아보기 어려운, “철없는 청년들의 고결한 반란”이었다. 인간의 존엄성과 문명의 진보에 대한 신념, 낙후하고 퇴락한 조국 러시아를 살리겠다는 애국심, 체제를 전복하는 사업에 얼마나 큰 위험이 따르는지 전혀 헤아리지 못한 순진무구함, 전제 왕정과 계급제도의 최대 수혜자이면서 체제에 반기를 든 아름다운 자기부정.
맹자 – “맹자”: 보수가 이념이 아니라 “연속성과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전통적인 제도와 관습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라면, 맹자는 정말 멋진 보수주의자였다고 할 수 있다. 진짜 보수주의자는 이익이 아니라 가치를 탐한다. 다른 누군가와 싸우는 전선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내면에 정체성의 닻을 내린다. 남을 비난하기에 앞서 자신을 성찰한다. 누가 자기를 알아주지 않아도 실의에 빠지지 않으며 깊은 어둠 속에서도 스스로 빛난다. … “귀하게 되고자 하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귀함을 지니고 있건만 생각하지 않아서 모를 뿐이다. 남이 귀하게 해준 것은 진정 귀한 것이 아니다. 조맹이 귀하게 해준 것은 조맹이 천하게 할 수 있다.”, “천하라는 넓은 집인 인仁을 거처로 삼고, 천하의 바른 자리인 예禮에 서며, 천하의 대도大道인 의義를 실천하여, 뜻을 얻었을 때는 백성과 함께 그 길을 가고, 그렇지 못하면 홀로 그 길을 간다. 부귀富貴도 나를 흔들 수 없고, 빈천貧賤도 나를 바꿀 수 없으며, 위세와 무력도 나를 꺾을 수 없어야, 비로소 대장부大丈夫라고 하는 것이다.”
사마천 – “사기”: 그는 항우가 죽는 날이 한신도 유방의 칼에 죽는 날이라고 예언했다. … 새 시대는 새로운 사람을 부른다. … 2000년 전 중국 대륙에서 터져 나왔던 인간의 야수성은 그럴듯한 환경만 조성되면 언제든 재현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유방과 한신은 야수적 탐욕이 판치는 정치/사회적 혼란과 전쟁의 한복판에 몸을 던졌다. 때로 짐승의 비천함을 감수하고 때로 스스로 야수가 되어 싸운 끝에, 야수의 탐욕이 지배하는 혼란의 시대를 역사의 뒤안길로 밀어냈다. 이것은 공자와 맹자 같은 고귀한 성인도 이루지 못한 위대한 일이었다. 정치는 위대한 사업이다. 짐승의 비천함을 감수하면서 야수적 탐욕과 싸워 성인의 고귀함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솔제니친 –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 이 대목이 마음에 착 안겨온 것은 ‘수용소 생활’과 ‘굶주림’이 낯설지 않은 탓이었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남자들은 대부분 여러 해 수용소 생활을 경험한다. ‘병영’이라는 이름을 가진 수용소다. … 굶주림 앞에서 인간은 나약하고 비열한 짐승이 된다. 논산 훈련소에서 내 자신이 ‘머리 좋은 짐승’처럼 느껴지는 순간을 여러 차례 겪었다. … 나는 당시 그렇게 행동하는 내 자신에 대해 큰 슬픔을 느꼈다. 명색이 지성인이 되고자 했던 제 잘난 인간이, 불과 넉 달 전에는 정치군인들의 권력 찬탈을 저지하기 위해 목숨 걸고 투쟁하자고 외쳤던 자가, 그래 밥 한 숟가락 더 먹어보겠다고 잔머리를 굴리고 있다니! 기껏 반찬 한 입 더 먹게 되었다고 행복을 느끼다니, 그대 비천한 짐승이여!
다윈 – “종의 기원”: 위대한 철학자는 시간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남는다. 마르크스는 “우리는 서로에게 무엇인지”, 프로이트는 “내가 누구인지”, 다윈은 “인간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밝히려 했다. … 사회복지 분야에서 일하는 진보적 연구자들 사이에서 다윈주의는 암묵적 ‘금칙어’인 모양이다. … 인간은 이기적 본성을 버리지 못하지만, 동시에 이타 행동을 우러러보는 직관적 도덕률을 지닌 동물이다. 인간은 또한 밤하늘의 별을 볼 때에도 땅에 발을 디뎌야만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현실의 이해타산을 무시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만, 고결한 이상주의가 사라진다면 인간의 삶이 너무 비천할 것 같다.
베블런 – “유한계급론”: 부富는 그 자체가 목적이다. … 베블런의 관찰에 따르면 호모사피엔스의 야만 문화가 약탈적 단계에서 준평화적 단계로 이행하면서 유한계급의 행동 양식에 큰 변화가 찾아들었다. 성공의 지표가 약탈의 전리품에서 축적된 재산으로 옮겨간 것이다. 결국 처음에는 단순히 능력의 증거로 평가되던 부의 소유가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다는 일반적 통념이 굳어지는 것이다. 야만 문화의 준평화적 단계에 사는 사는 현대인들이 부를 축적하려고 분투하는 것과 야만 문화의 약탈적 단계에서 힘 센 남자들이 무기를 들고 다른 집단을 습격해 여자를 뺴앗아 오던 것은 양상만 다를 뿐 똑같은 동기에서 나온 인습적 행동이다. … 유한계급은 생활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의 부를 만인의 눈앞에서 입증하는 수단으로 소비를 선택한다. 그런데 혼자서 소비하는 데 한계가 있다. 배우자, 가족, 집사, 하인, 파티에 초대받은 친구와 친척이 모두 ‘대행적 소비자’로서 그를 대신해서 부를 ‘낭비’하면서 그가 얼마나 관대하며 돈이 많은 인물인지를 증명해줄 목격자가 된다. … “유한계급론”은 호모사피엔스의 주류 경제학에 대한 비판이며 조롱이다. 주류 경제학의 합리적 개인이라는 관념과 효용 함수의 근저에 있는 기본 공리를 부인했다. … 유한계급에게는 가치가 가격을 규정하는 게 아니라 가격이 가치를 결정한다. 그들에게는 값이 비싼 것이, 품질과 무관하게, 오로지 비싸다는 이유 때문에 그만큼 가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소위 ‘명품의 경제학’이다. 곤란에 빠진 경제학자들은 베블런의 이론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하나의 드문 예외로 치부하여 논리적 파산을 모면했다. … 개인의 정신적 적응은 환경의 변화가 몰고 온 압력이 강하고 개인이 기존의 지배적 생활양식을 고수하면서 그 압력을 견딜 수 있는 능력이 약할수록 더 잘 일어난다. 생활환경의 변화가 주는 압력에 덜 노출되거나 둔감한 사람일수록, 그 압력을 버텨낼 힘이 있는 개인일수록 더 오래 정신적 적응을 거부할 수 있다. 유한계급은 물질적 이익이나 기득권 때문에 보수적인 것이 아니다. … 보수주의는 상층계급의 특징이기 때문에 품위가 있는 반면, 혁신은 하층계급의 현상이기 때문에 저속(vulgar)하다.
헨리 조지 – “진보와 빈곤”: 리카도는 농업생산력의 발전이 가져오는 풍요의 열매를 토지 소유자가 독점한다는 차액지대론을 수립함으로써 경제학에 ‘우울한 과학(dismal science)’이라는 불길한 운명을 선고했다. … 부의 평등한 분배가 이루어진 사회에서는 정부가 민주화될수록 사회도 개선된다. 그러나 부의 분배가 매우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정부가 민주화될수록 사회는 오히려 악화된다. … 부패한 민주 정부에서는 언제나 최악의 인물에게 권력이 돌아간다. 최선의 인물은 바닥에 가라앉고 최악의 인물이 정상에 떠오른다. … 가장 미천한 지위의 인간이 부패를 통해 부와 권력에 올라서는 모습을 늘 보게 되는 곳에서는, 부패를 묵인하다가 급기야 부패를 부러워하게 된다. 부패한 민주 정부는 결국 국민을 부패시키며, 국민이 부패한 나라는 되살아날 길이 없다. 생명은 죽고 송장만 남으며 나라는 운명이라는 이름의 삽에 의해 땅에 묻혀 사라지고 만다. … 토지 사유는 커다란 맷돌의 아랫돌이다. 물질적 진보는 맷돌의 윗돌이다. 노동 계층은 증가하는 압력을 받으면서 둘 사이에서 갈리고 있다. … ‘근본적 변화’는 아름다운 꿈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에 이르지 못하는 부분적/점진적인 개선을 아름답지 않거나 의미 없다고 비난할 일은 아니다.
하인리히 뵐 – “카탈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이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숨이 막혔다. <차이퉁>이 카타리나 블룸의 명예를 짓밟은 방식이 너무나도 ‘리얼’했기 때문이다. <차이퉁>은 주로 두 가지 방법을 썼다. 첫째는 검찰청 조사실에서 오간 이야기를 악의적으로 왜곡해 중계방송을 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수법은 그녀를 아는 사람들이 한 말을 교묘하게 왜곡하는 것이었다.
E.H. 카 – “역사란 무엇인가”: 흔히 ‘사실’은 스스로가 말한다고들 한다. 이것은 물론 진실이 아니다. ‘사실’이라는 것은 역사가가 불러줄 때만 말을 한다. … 현대인은 여러 세대의 경험에서 배우고 그것을 자기의 경험과 결부시킴으로써 사고의 효율성을 몇 배로 확대하였다. 생물학자들이 부정하는 획득형질의 유전이야말로 사회 진보의 토대인 것이다. 역사는 획득된 기술이 세대에서 세대로 전승됨으로써 이루어지는 진보다. … 흘러가는 것은 사건만은 아니다. 역사가 자신도 그 흐름 속에 있다. 만일 똑같은 강물에 두 번 다시 들어갈 수 없다고 한 철학자의 말이 옳다면, 한 역사가가 같은 책을 두 번 쓸 수 없다는 말 역시, 같은 이유로 진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