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운전석과 조수석

지난 여름에 학교에서 좀 멀리 이사한 이후에 같이 사는 준혁이 형의 차를 간간히 얻어타고 다니고 있다. 얼마 전에도 한 번 차를 얻어타고 오면서 퍼뜩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적어둬야지 하다가 지나친 내용인데 이제야 글로 옮긴다.

형은 내가 아는 길과 조금 다르게 꼬불꼬불 골목길로 차를 몰아서 집으로 온다. 나는 잘 모르겠지만, 형 말로는 지름길이라 한다. 아무튼 나도 오며 가며 두세번은 본 길이다. 그 날도 평소처럼 대략 멍하니 조수석에 앉아서 초점 없이 앞을 보고 있는데, 어떤 교차로에서 ‘여기서 좌회전인가 직진인가’라는 물음이 번뜩 들었다. 짧은 순간 동안 기억을 더듬어 봤으나 생각해 낼 수 없었다. 형은 평소처럼 좌회전해서 갔지만, 나는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조수석에 앉아서 구경만해서는 기억에 남지 않는구나.’

물론 형은 나보다 같은 길을 훨씬 자주 다녀봤을테니 길을 더 잘 아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나는 비록 그 길을 두세번만 가봤지만 내가 직접 운전하면서 좌회전과 우회전을 내 스스로 결정했다면 기억에 분명히 남았을 것이다.

살아감에 있어서 감각이 깨어있다는 말은 그 삶의 운전석에 앉아있다는 말이 아닐까 싶다. 물론 조수석에 앉음으로써 책도 좀 읽을 수 있고, 잠을 잘 수도 있고 또 다른 차원의 경험을 누릴 수도 있지만, 의사 결정자로서의 경험과 생생한 기억은 가질 수 없다. 같은 것을 본다고 생각해도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과 따라가는 사람이 얻는 경험은 전혀 다른 것 같다.

이것은 아이의 교육에 관해서 의미 있는 비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요즘 대학에서는 학점 클레임을 하는 학부모도 있다는 것을 예전에 읽은 적이 있는 까닭이다.

물론 타고난 재능이 있어서 조수석에만 앉아있다가도 운전석에 앉히니 별 탈 없이 차를 잘 몰 수도 있을 것이고, 섣불리 운전석에 앉혔다가 차 자체를 박살낼 수도 있을 터이다.

우리 모두는 좋든 싫든 언젠가는 운전석에 앉아야 한다. 무엇보다 운전석에 앉으면 조수석에서는 느낄 수 없는 섬세한 것들을 느끼고 보다 잘 기억할 수 있다. 하나하나 지나치는 고속도로 표지판들, 거리 이름, 깜빡이를 넣고 차선을 바꾸는 미묘한 타이밍, 좌회전 차선을  타려고 무리하게 차선을 바꾸고 등 뒤에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들. 설령 우리가 우리 삶을 컨트롤할 수 있다고 느끼는 것이 착각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느낌을 한 번쯤 가져보는 것은 꽤 짜릿하다.

부모들도 자신의 과잉보호가 때로는 아이들의 삶에서 이런 섬세한 경험들을 빼앗는 것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