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기타에 대한 소고

어제 오랜만에 기타를 꽤 오랫동안 쳤다. 한 너댓 시간은 친 모양이다.

기타를 처음 배우기 시작한 것이 초등학교 때니까 꽤 오랜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중학교 때는 별로 재미가 없어져서인지 별로 안 쳤고, 고등학교 때는 MOB라고 클래식 기타 동아리를 할 때만 간간히 쳐서 사실 공백기가 꽤 긴 편이다. 그래서 지금도 그렇게 기본기가 탄탄한 것은 아니다. 군대가기 전까지 대학교 때 했던 화현회라는 클래식 기타 동아리에서 기타를 꽤 많이 쳤었다. 군대 갔다오고 나서는 또 거의 안 쳤고, 요새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으니 또 기타를 자주 잡게 되는 편이다.

모든 악기가 일장일단이 있을 것이지만, 내가 느꼈던 클래식 기타라는 악기의 장점 몇 가지를 정리해 보자면,

  1. 혼자서 꽤 들을만한 화음을 만들어가며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타 보다 혼자서 더 화려하게 화음을 낼 수 있는 악기는 피아노와 같은 건반악기류 밖에 없지 않나 싶다. 바이올린 같은 찰현악기도 기타와 같은 현악기지만 활로 소리를 내야되기 때문에 일정 이상의 화음을 내는 것은 쉽지가 않다고 알고 있다.
  2. 또 다른 장점은 다양한 소리의 구사가 가능하다는 것. 오른손을 브릿지에 대고 치면 거문고나 가야금 같은 “퉁퉁” 거리는 소리를 낼 수도 있고, 줄을 잡아 뜯으면 음에 타악기류의 소리도 섞여 넣을 수 있다. 그리고 통을 두들기면 완전 타악기로의 역할도 가능.
  3. 마지막으로 운반이 용이하다 -_- 뭐 플룻이나 단소, 리코더 같은 작은 악기에 비하면 훨씬 어렵긴 하지만, 하프나 피아노에 비하면 훨씬 편할 것 같다. 길거리에서 연주할 수도 있고, 악기만 있으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은 상대적으로 덜 받는다.

치명적 단점은 소리가 작다는 것 ㅠㅠ 물론 음향에 대한 고려가 잘 되어 있는 연주 홀에서 공연할 때는 별 문제가 없지만, 길거리에 클래식 기타를 친다고 생각하면 조금만 떨어져 있어도 소리가 안 들릴 거라 생각한다. 반대로 이런 점은 밤에 집에서 혼자 칠 때는 장점이 되기도 한다. 이런 문제로 작년 여름에 사일런트 기타라는 것을 사서 잘 쓰고 있다. 앰프에 연결할 수 있는 클래식 기타라고 생각하면 된다.

아무튼.

기타를 치다보면 지판을 짚느라고 왼손가락 끝에 굳은살이 잡힌다. 그 굳은살이 잡히는 과정이 사실 꽤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굳은살은 하루 24시간 몰아서 기타를 친다고 한번에 잡히는 것이 아니다. 하루 정도 지독하게 치면 왼손가락 끝에 껍질이 벗겨지는 정도이다. 이것이 다시 아물고 다시 껍질이 벗겨지고 그 과정이 수없이 반복되다보면 굳은살이 슬슬 잡히기 시작한다. 굳은살이 조금씩 잡히기 시작하면 지판을 잡을 때 좀 더 단단하게 잘 잡을 수 있게 된다.

이런 식의 학습 과정은 비단 기타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말콤 글래드웰이란 아저씨가 10,000시간의 법칙 (무슨 일이든 전문가가 되려면 10,000시간 정도의 경험을 쌓아야 한다) 이라는 걸 얘기한다는데, 말이 10,000시간이지 어느 분야든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을거라 생각한다. 수 없이 치이고 까여서 껍질이 벗겨지고, 그걸 딛고 일어섰다가 또다시 까이고 벗겨지고.

어느 분야에서든 하루 아침에 이뤄질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 하다. 뭔가를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쓰러졌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다보면, 투박하지만 진실한 “속”이 나타날 것이다.